Abstract
1960년대에 집중적으로 제기된 논리경험주의에 대한 대다수의 철학적 공격은 이른바 논리경험주의의 ‘수용된 견해’를 향한 것이었고, 이후 과학철학자들이 공공연히 ‘논리경험주의는 죽었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까지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의 위상은 낮아졌다. 문제는 이와 같은 논리경험주의의 ‘수용된 견해’가 대부분 비엔나 학파를 대표하는 카르납의 철학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의 논리경험주의에 대한 역사철학적 탐구가 보여주듯, 논리경험주의 내에 다양성이 존재했고 특히 카르납으로 대표되는 비엔나 학파와 라이헨바흐로 대표되는 베를린 학파 사이에는 중요한 철학적 입장의 차이가 있었다. 만약 우리가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적 입장을 카르납과 비견될 만한 논리경험주의의 중요한 인식론적 입장이라고 간주한다면, 과연 그의 입장이 이후 논리경험주의에 대해 제시된 각종 비판을 견딜 수 있는지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나는 논리경험주의의 입장과 이에 대한 비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학철학자 수피(Suppe)의 논의를 검토한 후, 논리경험주의에 대한 후대 철학자들의 비판이 결정적이지는 않았음을 보인다. 다음으로 나는 ‘과학적 철학’ 개념,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구분, ‘과학 이론의 합리적 재구성’, ‘과학자와 철학자의 노동 분업’ 등 논리경험주의의 주요 인식론적 논제에 관한 라이헨바흐의 입장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재구성을 통해 나는, 라이헨바흐의 인식론적 입장이 구체적인 과학 이론의 인식론적 의의와 함축을 도출해내는데 있어 여전히 유효한 입장이라는 것을 보일 것이다. 실제로 라이헨바흐가 주장한 ‘이론 구체적인 인식론적 분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하고 필요한 철학적 방법론이며, 이 방법론은 논리경험주의에 반대하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논리경험주의가 오늘날의 과학철학에 남긴 소중한 유산이라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