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성적 대상화 문제는 현대 페미니즘 철학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Objectification」(1995)에서 누스바움은 기존 페미니즘 연구에서 대상화가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는 사실을 비판하며, 상대에 대한 인격적 존중이 동반될 경우 긍정적인 대상화 또한 가능함을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누스바움이 설명하는 긍정적 대상화가 주체의 선의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주체의 선의에 따라 상대가 인격적으로 대우받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누스바움이 제시하는 긍정적 대상화란 근본적으로 임의적인 지위를 가지며, 나와 타인의 관계에는 언제든 폭력이 침입할 여지가 남는다. 이 글은 대상화에 대한 누스바움의 논의가 ‘임의성’의 문제를 가진다는 사실을 보이고, 사르트르의 대타관계 모델을 바탕으로 대상화 문제를 성찰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누스바움과 달리 사르트르에게 있어 타인이 대상이 아닌 주체로 거듭나는 것은 나의 임의적 선택에 맡겨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시선은 나에 의해 대상화될 수 없는 나의 주체성의 한계를 형성한다. 사르트르의 철학을 경유함으로써 우리는 대상화에 관한 페미니즘 논의의 바탕에 타인, 그리고 주체에 관한 허위관념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대상화의 문제를 사유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