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廟’字는 西周時代의 金文에서 처음 보이기 시작한다. 宗廟가 군신 간의 ‘朝의 의례’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廟의 造字 과정에서 ‘朝’자가 활용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朝자 ‘月’ 부분의 형태에 변형이 생겼다. 朝와 廟 金文의 ‘月’ 부분은 모두 개울물 형상을 나타내고 있다. 廟자에서의 개울물 형태의 ‘月’은 周代와 그 이전 대의 대형 건축물에 설계된 排水道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西周時期 宮廟遺跡地로 陝西省 扶風縣의 雲塘과 齊鎭을 들 수 있으며, 春秋時期의 것으로는 陝西省 鳳翔縣 馬家莊 1호와 馬家莊 3호 유적지를 논할 수 있다. 그것들 대부분 堂廂分離式의 品자 형태를 보이는 건축군들로 구성되어 있다. 독특하게 보이는 마가장 3호 유적지는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은 터에 다섯 부분으로 구획되어 있는데, 이 역시 두 組의 品자형 건축군이다. 한편 위의 경우처럼 가까운 거리에 한 組 이상의 대형 건축군들이 존재하는 것은, 당시 다수의 廟를 소유할 수 있는 규정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天子七廟·諸侯五廟···’ 등의 소유 廟數가 규정대로 지켜졌는지는 회의적이며, 그 배열 역시 태조 묘를 중심으로 昭·穆의 나란한 정렬이 아닌 산발적 배치로 봐야 할 것이다. 周代의 종묘는 治朝의 공간으로서, 각종 종교적·정치적·외교적인 의례가 이행되던 곳이었다. 秦代 이후 제사 의례와 정치·외교 의례의 분리가 진행되면서, 宗廟는 先君의 제사 의례를 이행하는 장소로만 불리게 되었고, 정치적·외교적 기능 및 거주공간으로서는 ‘(황)궁’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였다. 宮은 원래 일반적인 ‘집’의 의미로 사용된 용어였지만, 시황제 이후로는 ‘최고통치자의 집’으로만 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