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의 목적은 설의 ‘배경’과 듀이의 ‘미적 경험’의 관점에서, 인공지능이 미적 경험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규명하는 데 있다. 필자는 동시대 미술에 관한 단토의 분석처 럼, 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 또한 ‘식별불가능성’ 문제에 직면했다고 본다. 다만 이 개념은 지각적으로 동일한 사물들의 관계가 아니라 예술적 주체를 식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기 되는 문제이며, 대표적으로 럿거스대학의 연구팀이 제공하는 AICAN의 작품들을 통해 확 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AICAN의 작품처럼 ‘시각적 튜링 검사’를 통과하더라도, 현 재의 인공지능은 자율적인 예술적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설에 따르면 인공지능의 언어는 ‘파생적 지향성’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설의 지향적 의미론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배경’이다. 설은 지향적 상태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으로서, 선지향적 이고 비표상적인 배경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필자는 이러한 배경이 일찍이 듀이가 제공했 던 ‘미적 경험’의 영역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예술적 의미의 원천은 단순히 기호적 층위의 조작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듀이의 미적 경험처럼 몸과 세계와의 교호작용으로 부터 창발하는 질적 사고에 대한 이해 즉, ‘경험된 세계’를 필요로 한다. 그 결과 이 글은 몸이 없는 인공지능은 창작활동의 협력자는 될 수 있더라도 미적 경험의 주체는 될 수 없 다고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