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논문은 유희충동 개념을 중심으로 실러의 미적 자유 이론이 갖는 정치철학적 함의를 탐구한다. 그 전제는 실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가 미학을 매개로 한 정치적 주체에 대한 예비론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미학적 근본 개념들을 주관주의적, 미학적으로 다루는 것을 넘어 인간학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으로 확장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는 유희와 충동 각각에 대한 실러의 이해, 그리고 유희충동 개념 등을 차례로 탐색하면서, 유희충동이 결국 미적 자유에 대한 실러 고유의 표현임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유희충동 개념이 주체 이론에 대하여 갖는 의미를 도출한 뒤, 이로부터 실러 미학의 정치철학적 성격을 해명하고자 한다. 실러의 유희충동은 감성과 이성이라는 인간의 두 본성 간의 균형으로부터 산출되는 제3의 충동, 혹은 균형 산출의 활동 자체로서, 미적 경험 속에서 비로소 활성화된다. 현실 속에서 인간은 두 본성 가운데 하나의 압도적 우세에 의해 지배되지만, 미적 경험 속에서 그와 같은 지배는 일시적으로나마 해소된다. 유희충동은 인간의 이중적 본성이 각자 고유의 논리에 따라 서로로부터 자유롭게 전개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자, 동시에 인간이 자신을 지배하던 충동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유희충동 속의 미적 주체는 탈중심적이고 탈주관적인 성격을 갖는다. 미적 주체는 실천적으로 무능력하기에 현실 정치에 곧바로 개입할 수 없지만, 바로 이 무능력 속에서 정치적 실천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그것은 미적 경험을 통해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하고, 지배 아닌 다른 관계의 능력을 연습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적 주체의 자유는 현실을 지배하는 기존 질서에 대한 잠재적 저항이다. 그러나 이런 독해가 곧 미학의 도구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 또한 총체성의 미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학과 정치는 서로를 지시하고 서로를 요구하지만 여전히 이질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