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용서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한 가지 생각은 용서가 우리 안에 있는 분노나 화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버리는 것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 하에 분노가 사라져야 용서라고 할 수 있는가? 용서에 대한 철학적 설명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주는 데에 있다. 이 논문은 이 질문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제시하는 대표적인 두 철학자, 히에로니미(Pamela Hieronymi)와 노비츠(David Novitz)의 입장에 대해 논의하려고 한다. 히에로니미의 입장은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라는 우리의 직관을 잘 포착하고, 노비츠의 입장은 용서는 전적으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라는 또 다른 직관을 포착한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용서에 대해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입장의 핵심 논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하고, 궁극적으로 분노가 “판단에 민감한 태도”라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는 히에로니미의 입장을 옹호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비츠의 입장이 어떻게 반박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증을 제시할 것이다. 필자는 분노를 판단에 민감한 태도로 받아들일 때, 용서(분노의 극복)의 문제는 분노를 버릴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졌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문제라고 주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