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스피노자는 관용의 철학자인가? 이 글은 관용을 옹호하는 스피노자의 논증에 애매함이 있으며, 이 애매함을 자유주의의 규범적 입장 대신 순전한 역관계를 논거로 삼는 그의 현실주의를 통해 해명하고자 한다. 『신학-정치론』에서 그는 권리란 곧 욕망과 역량이 미치는 만큼이라는 독특한 자연권 개념을 바탕으로 근대 여느 철학자보다 급진적으로 의견의 자유를 옹호한다. 그러나 그는 종교권력의 정치권력에 대한 종속은 물론, 의견의 자유 역시 심각하게 제한할 여지를 둔다. 그에게 문제의 핵심은 정치권력보다는 종교분파의 불관용, 궁극에는 정서모방의 파괴적 효과로서, 자신과는 다른 기질의 인간을 참지 못하는 대중의 불관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홉스와 같은 절대주의적 해결책이 아니라 자유를 옹호하는데, 그 이유 역시 정서 법칙을 통해 해명된다. 곧 정치적-법적 불관용은 대중의 불관용에 대한 수동적 반응에 불과하며, 대중의 불관용을 낳는 인간 본성의 법칙, 곧 코나투스와 정서 모방 자체에 의해 더 해로운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관계를 고려한 관용의 정당화 논변은 오늘날 ‘혐오주의’와 같은 대중의 악덕에 대한 직접적인 법적 대응의 위험을 시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