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가브리엘 마르셀에게 있어서 존재론적 차원에서 보자면 모든 소유하고자 하는 갈망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진정한 소유란 오직 직접적이고 절대적으로 ‘나의 것’인 나의 육체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미 있는 갈망이란 존재의 차원에서 주어지는 것인데, 이는 존재의 갈망 혹은 존재에 대한 갈망(désir de l'être)이다. 마르셀에게 있어서 그의 존재란 ‘그인 모든 것’ 혹은 ‘그의 총체성’을 의미하기에 육체가 존재의 한 요소일 뿐 아니라, 육체적 실존을 유형적 실존(existant-type) 혹은 다른 모든 실존들의 척도로 규정된다. 이러한 관점은 감각적 경험에 조차 형이상학적인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존재란 ‘총체성’이라는 그 특성에 의해서 ‘일면 이해가능하나, 일면 이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므로 ‘신비’의 특성을 지니며, 결코 ‘문제’로 이해될 수 없다. 존재는 또한 ‘총체성’이란 그 의미 안에 ‘초월적인 것과의 관계성’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점에 있어서 마르셀은 스콜라철학의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즉 존재에 대한 갈망의 궁극적인 지점에서 마주하는 것은 곧 ‘신적 현존’에 대한 갈망이다. 이리하여 존재에 대한 갈망은 ①소유의식에서 존재의식에 대한 갈망으로, ②나의 실재 자체(ma réalité même)에 대한 갈망으로, ③문제가 아닌 신비로서 그리고 ④초월성에 대한 갈망에로 라는 4가지 국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갈망이 충족되기 위해 요청되는 것이 곧 ‘존재론적 exigence’이며, 그것이 사회 환경의 변화에 대한 것일 때는 정당한 권리에 대한 청원이므로 ‘요구’의 형식으로 나타나며,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것이거나 신적 현존에 대한 것일 때는 ‘상호주관성’의 원리에 의해서 ‘요구’가 아닌 ‘요청’의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에 대한 갈망이 이상적인 형식으로 충족되는 것은 곧 ‘사랑(amour)’과 종교적 사랑(charité)에 의해서 인데,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소유의식’이 아닌 ‘존재의식’으로서 ‘내적인 일치’를 통한 ‘하나 됨’을 지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