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고는 메이지 최초의 근대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니시 아마네의 학문 형성에 있어 ‘주관과 ‘객관’ 개념의 성립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오늘날 근대학문의 핵심적인 용어들인 ‘주관’과 ‘객관’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니시의 저작들인 「百學連環」(1870), 「生性發蘊」(1873) 등에서였다. 니시는 여기서 ‘subjective contemplation’과 ‘objective contemplation’의 역어로 ‘此觀’과 ‘彼觀’이라는 용어들을 썼다. 그러나 니시는 근대학문의 구조를 논한 「知說」(1874)에서는 이 ‘차관’과 ‘피관’ 대신에 ‘주관’과 ‘객관’이라는 어휘를 최초로 사용했다. 니시 철학에 있어서 ‘주관’과 ‘객관’은 사물에 대한 인식적 어휘로 등장했다. 니시는 사물을 보는 단서를 ‘彼’에 있는 목적에서 시작할 때 ‘피관(객관)’이라 하고, ‘此’에 있는 목적에서 시작할 때를 ‘차관(주관)’이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주관’과 ‘객관’은 전통적 한자어를 조합한 것이었지만, 그 번역어에는 큰 개념적 전회가 있었다. 니시는 ‘차관’의 ‘차’를 ego의 번역어로, ‘피관’의 ‘피’를 God의 번역어로 이해했던 것이다. 특히, 피관의 ‘피’는 전통적인 한자어가 뜻하는 손님이나 제삼자의 의미가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님, 즉 God의 개념에서 번역되었다는 점에서 양자 사이에는 세계관의 차이가 존재했다. 일찍이 전통적 세계관 안에서 기능했던 ‘피(객)’라는 어휘는 이제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기능하는 어휘로 탈바꿈한 것이다. 니시 철학의 핵심은 성리학적 ‘리’의 재해석을 통해 물리와 심리를 구분하고, 물리 즉 자연과학의 연구를 통해 심리를 규명하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심리의 규명은 ‘백교일치’의 학문을 지향했던 니시 철학의 중요한 목표였고, 그것은 물리와 심리를 재차 연결하는 과제를 남겼다. 니시는 물리(생리)와 심리(성리)의 연결은 생체학의 연구를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곧 객관적 방법론과 주관적 방법론의 통합을 의미했다. 그러나 생체학으로부터 결국 통합 학문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 니시는 물리와 심리를 구분해서 논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물리와 심리의 구분은 이원화된 인식구조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주객의 문제라는 근대 서구철학의 핵심적 과제가 메이지 지식사회에 비로소 이식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니시 이후 ‘주객이원론’의 문제는 20세기 현대철학의 중심 과제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