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한국사회의 불신지수를 반영하듯, 최근 ‘소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소통을 위해서는 합리성과 사실을 존중하는 공론의 장을 형성해가야 한다는 논의가 공감을 얻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진정한 사회적 소통을 위해 합리적 토론문화의 형성 이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이 타인에 대한 ‘공감’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전통 유학의 사회 및 정치사상은 타인에 대한 공감을 기저로 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역의 감응론이 그 이론적 토대임을 논한다. 역의 감응론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인 감응을 통하여 인간사회와 우주적 생명세계에 형통함을 가져오려는’ 목적을 지닌다.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음양의 율동은 자연세계와 인간사회를 관통하여 부단히 생생(生生)작용을 거듭해 가며, 『주역』에서는 이러한 생생작용을 인(仁)의 가치로 수렴한다. 생명살림의 의미로서 ‘인’은 대대관계를 이루는 두 주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유학적 사회관계를 대표하는 오륜(五倫)은 대타자적 균형감각을 핵심으로 한다. 오륜에서 ‘부모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성스럽다’고 하여 쌍방향 윤리를 제시하는 것은 감응 이론의 확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감응과 소통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윗자리의 지도자에게 있다.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라는 삼강(三綱)의 윤리에서 권력관계의 우월성을 읽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윗자리에 처한 사람의 책임과 소임에 대한 강조를 읽을 수 있다. “남의 슬픔과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정치[不忍人之政]”를 설파한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정치, 더 나아가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치는 관계적 사유를 중시하는 역의 감응론이 정치적 원리로 발현된 형태로 볼 수 있다. 경연, 상소제도 등과 같이 조선의 지식인들이 추구했던 언로개방의 소통정치 또한 감응론에 입각한 정치 방법론이라 하겠다. 오늘날 한국정치현실에서 유학의 공감의 정치원리와 그 기초로서 역의 감응론은 새롭게 연구할 시의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