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논문은 마왕퇴 백서 『역전』에 보이는 ‘言’을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 특히 유가와 도가 사상과 비교, 고찰하는 것을 통해 전국시대에서 전한초기에 이르는 시기의 유가 사상의 변화 과정과 『주역』의 유교경전화 과정을 규명한 것이다. 마왕퇴 백서 『주역』은 고대 『주역』의 본모습을 복원하고 그 사상적 변화과정을 추적하기에 대단히 유용하고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마왕퇴 백서 『역전』의 자료적 성격을 살려서 ‘言’이라는 중심 테마를 통해 『주역』이 철학서이자 유교경전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과 유교가 당시의 제자백가 사상, 특히 도가사상과의 교류와 투쟁을 통해 새로운 유교사상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명확하게 밝히고자 한다. 선진시대의 유가는 언어관의 특징은 『논어』와 『순자』에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문제를 포함하여 말에 가장 주목한 학파는 도가였다. 도가는 ‘不言’, ‘無言’의 사상을 주장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절대적 근원자인 道는 말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음을 주창하였다. 그 결과 ‘不言의 가르침’이라는 테제를 창출해 내었다. 『주역』의 괘효사에 보이는 ‘言’자를 분석하여 볼 때 괘효사의 ‘言’에는 어떠한 사상성도 존재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국말에서 전한에 걸친 시기의 유가는 사상성이 없던 『주역』의 괘효사에 대해 도가의 ‘不言’, ‘無言’의 사상을 수용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리게 된다. 이러한 시도는 마왕퇴 백서 『역전』 역지의편, 이삼자편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역지의편과 이삼자편에 보이는 ‘言’에 대한 사고는 당시 사상계의 논의를 종합적으로 수용하였다. 특히 이삼자편은 순자의 ‘分’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성인, 군자의 언행과 소인의 언행을 구분하여 성인, 군자의 언행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지만 소인은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한다. 도가사상의 수용과 순자 사상의 영향으로 생각할 때 이들 양편의 성립연대는 전국시대 말기 이후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유가가 도가사상을 흡수하여 『주역』을 사상서로서 해석해내고 자파의 학설에 대한 재구축을 시작한 시기를 전국말 이후로 보아야할 것이다. 또한 백서 『역전』 계사편에서는 군자의 언행이 천지를 움직일 수 있다고까지 주장되어 유가의 성인, 군자가 인간사회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중심으로까지 격상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주가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신하를 잘 통치할 수 있다는 군주론, 통치론도 주장되고 있다. 그리고 백서 계사편에서는 도가의 ‘不言’, ‘無言’의 사상을 받아들여 진리가 말로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성인이 이를 위해 象, 卦, 辭(괘효사)를 만들어 이를 매개로 진리를 표현하고 전달한다고 서술되고 있다. 이것은 계사편의 작자가 도가사상을 도입하면서도 『주역』을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도가를 극복하여 결국 유가의 성인이 도가의 성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밝히는 내용이다. 이상의 고찰에서 유가가 도가사상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상체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명확하게 밝혀졌다. 유가의 성인이 진리를 파악하고 전달하는 것은 『주역』을 매개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주역』은 단순한 점서이어서는 안 되고, 성인의 眞意를 포함하고 있는 지고의 경전이 아니면 안 된다. 『주역』이 유교 경전으로 탈바꿈하게 된 주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