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최근 우리에게 부각된 『크리톤』의 해석적 과제는 의인(화된) 법률연설의 위상과 의미인데, 권위와 복종의 문제에 대한 하트(V. Harte) 등의 문제제기에 제대로 답해야 한다. 바람직함이 당연시되는 민주주의 역시 숙고의 대상인데, 거기에 이용될 만한 자산인 플라톤은 친민주-반민주 이분법 도식 하에 민주주의 반대편에 정위되어 둘 사이의 만남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논의되어 왔다. 이 글은 이런 해석적, 실천적 과제에 부응하면서 『크리톤』에서 드러나는 민주주의에 관한 플라톤 철학의 적극적 함축의 실마리들을 탐색하려 시도한다. 우선 작품 서두가 부각하는 은밀함을 화두 삼아 소크라테스가 선생이나 조언자가 아닌 시민으로 설정됨을 확인하고, 이런 설정이 『변명』에서 『크리톤』전반부, 그리고 후반부로 이어지는 일련의 ‘소크라테스의 하강’과 그것을 관통하는 ‘로고스에 대한 복종’을 부각하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2절). 이어 전반부 대화와 후반부 법률 연설을 시민 소크라테스가 참여하는 두 대화 모델, 즉 대칭적 관계에서의 설득 모델과 비대칭적 관계에서의 설득 모델이라는 측면에서 조명한다. 먼저 전문가주의적 신념을 가진 소크라테스가 다중의 의견을 존중하는 크리톤과 나누는 대화인 전자에서는 당대 민주주의 절차와 정신에 대한 의식적 반성과 반영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음미한다(3절). 그리고 법률에 빙의한 자신과의 대화인 후자에서는 민주주의 하 시민이 권위에 대한 복종을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재현된다는 점에 주목하는데, 특히 법률 연설이 전반부 논의와 연속적이며 ‘하물며’ 논법과 ‘자기 설득’이라는 장치 등에 의해 전반부 논의에 긴밀히 통합된다는 점을 선명히 하면서 하트 등 웨이스(R. Weiss) 식 해석의 강한 지점을 공략한다(4절). 끝으로 소크라테스의 하강과 은밀함을 통해 이 작품이 결국 플라톤 정치철학의 시작점과 끝점에 위치한 『변명』과 『법률』을 연결시키는 접점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부각한다(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