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연구의 목적은 朱子의 기질 변화설에 담긴 실천적 함의를 살펴보는 데 있다. 주자의 理氣論 구도에서 보자면, 기질 변화설은 기질이라는 숙명의 원죄를 씻고 본연의 선한 품성을 회복한다는 선악 이원론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기질 변화에 대한 주자의 의도가 다른 데에 있었다고 파악하고, 사상사적 맥락 안에서 기질 변화설의 수양론적 의미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주자는 陸象山과 같은 내면-주관적 수양론자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기질 변화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주자에 따르면, 육상산은 현실의 기질 문제를 쉽게 간과해버린 채 마음의 본체만 직관하려고만 하는데, 그런 태도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 육상산은 순선한 본성의 現成만 강조하고 현실의 불선한 기질은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본성과 기질을 혼동하고 있다. 그 결과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건 모두 본성이 발현된 것이라고 여기는 주관주의와 방임주의에 빠지고 만다. 이러한 점에서 주자는 육상산의 학문이 가치 규범에 대한 자의적 일탈과 방임을 양산한다고 비판한다. 둘째, 주자는 육상산이 초월적 직관이나 頓悟 같은 잘못된 수양 방법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육상산은 주자의 점진적 수양법을 지리멸렬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마음의 본체를 곧바로 직관하면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주자가 보기에 이것은 일상 세계 안에서 下學上達하는 점진적인 수양의 과정을 무시한 채 신비적이고 비상식적으로 躐等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자는 그의 공부법을 禪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주자가 생각하는 수양은 이와 정반대이다. 주자는 기질의 현실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본성의 이상에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 수양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즉 일상 세계의 상식적 가치들을 준수하고 실천하면서 근실한 태도로 점진적인 자기 변화를 이루어가는 노력의 과정, 간단히 말해 자기의 기질을 변화시켜가는 과정이 참된 수양의 길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주자는 도덕 수양을 일상 세계의 상식적 지평 안에 세워놓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 입각하여 주자 철학의 근본 성격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주자 철학의 근본 성격은 지고한 이상을 희구하는 것이라기보다 비근한 현실을 변화시켜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고차원적 사유 체계로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 철학이라기보다 일상 세계의 평범한 인륜 가치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실천 철학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