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논문은 파우사니아스의 궤변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의 논증의 논리적 모순을 논박하고, 탁월성의 획득을 표방하며 아테네 법에 호소하는 그의 에로스론이 사실상 자신의 에로스적인 사적 이익으로서 소년애를 정당화하고 이기적인 논변임을 드러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또한 소년애를 합법화하는 과정에서 공적 영역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사적인 에로스적 욕망에 절대적 우선권을 부여하는 파우사니아스 궤변술의 비도덕성이 극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파우사니아스의 연설에서 가장 혁명적인 논점은 자신의 사적 욕망의 영역이 공적인 영역보다 절대적인 우선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연설은 궤변술을 통한 일종의 자기 변론이다. 그가 자신의 독특한 에로스적 취향인 소년애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개하는 논증은 (1)지성, (2)자유, 그리고 (3)탁월성 논변이었다. 그렇지만 (1)사랑받는 사람인 소년 애인보다 사랑하는 사람인 연장자가 더 지적이기 때문에 지성 논의는 오히려 소년애를 약화시켰고, (2)자기 원인으로서의 자유는 소년애적 노예노릇과는 양립 불가능하며, 그리고 (3)탁월성 획득을 위한 소년애도 사랑받는 사람을 수용자로 전락시킬 뿐이라는 것이 규명되었다. 육체적 아름다움의 노예노릇을 열망하는 파우사니아스에게는 모든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육체적 또는 영혼의 출산을 위한 수단이라고 소크라테스-디오티마의 가르침이 절실하다. 같은 맥락에서 파우사니아스의 사적인 에로스적 취향인 소년애적 관계에서 두 연인의 연합은 육체적 생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파우사니아스의 궤변술적 '꼼수'가 논박되어야 할 중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