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고의 논지는 셋이다. 첫째 깨달음은 문제의식과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볼 수 있고, 구체적인 맥락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붓다의 깨달음이라는 구체적인 맥락 하에서 괴로움의 해결이라는 문제의식과 그 해결 과정을 깨달음으로 볼 수 있고, 이를 통해서 붓다의 깨달음은 사성제의 삼전십이행상에 대한 안지혜명광으로 볼 수 있다.BR 둘째 깨달음의 의미는 변화한다. 붓다의 깨달음을 통해서 새로운 요소, 즉 연기가 추가됨으로 인해서 문제의식이 변화하게 된다. 깨달음의 내용 자체에 대한 추구가 문제의식으로 등장함으로 인해서 대승불교의 깨달음은 사성제와 연기성에 대한 안지혜명광으로 폭이 확대됨을 볼 수 있다. 이는 연기성으로 인해서 나의 괴로움과 타인의 괴로움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문제의식은 자신의 괴로움의 해결에서 전체의 괴로움의 해결로 변화하게 된다. 문제의식이 변화함에 따라서 깨달음의 의미도 변화하게 된다.BR 셋째 깨달음의 의미가 변화함에 따라서 불교의 목적론에 해당하는 연기, 무아, 공, 불이, 청정, 자성, 무자성 등의 의미가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초기불교에서 괴로움의 근원을 찾는 연결고리로서 연기가 대승불교에서는 제법의 연결성을 의미하게 된다. 괴로움을 자기뜻대로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초기불교의 무아는 대승불교에서는 사물의 비실체성을 의미하게 된다. 괴로움을 점차적으로 제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은 사물의 연결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연결성은 불이라는 측면에서 강조되고, 초기불교의 청정과 번뇌의 대립은 대승불교에서 이러한 대립을 떠난 상태로 나아간다. 부파불교의 법의 자성, 대승불교의 법의 무자성성, 선불교의 자성은 각기 법의 특징을 표현한다. 불교의 목적론의 변화는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빤냐 또는 반야의 의미변화를 가져온다. 괴로움의 원인을 꿰뚫어 아는 것에서 제법의 공성, 무아성, 연기성, 불이성, 무자성성, 자성성을 통째로 아는 것으로 변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