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노화”나 “노년” 개념이 철학적 탐구의 대상이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노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철학 작품은 생각보다 그 수가 훨씬 적다. 근대 이전까지 철학자들은 노화보다는 죽음을 더 보편적이고 심각한 철학적 문제로 간주했기 때문이다.BR 그러나 어느 시대에서나 노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인간 삶 전체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존재했다. 예컨대 인생을 “탄생, 성장, 성숙, 쇠퇴, 죽음” 등 시기별로 나누거나 일종의 순례 여행에 비유하여 인간적인 삶의 “전체성과 통일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한 시도에 관한 기록은 고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같은 전통은 19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서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노인학과 노인 의학의 등장으로 오히려 위축되는 양상을 보인다. 노화 과정에 대한 과학적 관리나 제어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으나, 늙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며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노년을 인생의 정점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그저 쓸쓸한 종말에 불과한지, 노인의 권리와 책임 그리고 미덕은 무엇인지, 또 “좋은” 노년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등과 같은 철학적 질문들은 여전히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BR 이 글은 먼저 현대 노화 관련 담론에서 주류로 받아들여지는 생물학적 노화 개념의 한계를 간략히 살펴본다(2.1). 이어서 인구 구조의 변화, 의학의 비약적인 발전, 에이징 산업화 과정 등에 의해 왜곡된 노인의 정체성 문제를 검토하고, 소포클레스의 비극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에서 만날 수 있는 고대인의 대안적 관점을 요약해 본다(2.2). 본론의 나머지 부분은, 개인이 노화 과정을 겪으며 자기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간·공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필요성에 할애된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