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정치철학은 다분히 통치관계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다루는 비극적 사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몸의 중심이 뇌나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픈 곳’에 있는 것처럼, 정치철학의 핵심 역시 한 시대가 짊어져야 할 비극의 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극은 한낱 개념으로 포착될 수 없는 궁극과 궁극의 대립적 충돌에서 발생한다. 비극적 상황에서 빚어지는 드라마틱한 감성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그 어떤 합리적 지성도 정치철학의 소재로 전환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찍이 그리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비극적 진리라 할 수 있는 “고통을 통한 이해”(pathei mathos)를 강조했다. 이는 태초에 행위가 있었고, 무릇 인간은 행위를 저지르고 나서야 그 결과로 고통을 겪으며 배움에 이르게 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가장 단단한 규범들의 구성물 가운데에 비극성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현상학자 라이너 슈어만이 제창한 이른바 “궁극의 현상학”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슈어만의 궁극의 현상학을 그리스 비극작품, 특히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과 소포클레스의 또 다른 의미의 3부작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적용해 정치 분야에서 비극적 진리가 항상 ‘이중구속’의 결과로 발생함을 밝힐 것이다. 미제로 남아 있는 대립국면을 몸소 체험하도록 하는 비극이야말로 “민주적 제도”이자 “그 자체로 완결된 민주교육”(a democratic paideia)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