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동양의 법제와 법사상에서 중요한 개념인 情·理·法에 대한 선행연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시대 민사판결인 결송입안(決訟立案)을 활용하여 情·理·法의 실제 적용례를 분석한 바는 없었다. 본고에서는 조선시대 재판사례를 근거로 들어 情·理·法의 관계를 규명하려 하였다. 그리고 전통법에서도 서양의 법원리주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 검토해 보았다. 한국 전통법에서 情·理·法의 관계는 다음 명제로 정리할 수 있다. ‘法이라는 것은 理로부터 다스려지는 것이고, 理는 情에서 나오는 것이다. 재판관은 이것 이외 무슨 다른 말을 하겠는가?(法以理折 理由情出 爲官守者 於復此乎 更有何說是乙喩)’ 중국의 情·理·法과 조선의 情·理·法은 상당히 유사한 논증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의 情·理·法은 분묘에 관한 소송(山訟)에서 중국법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분묘소송은 情·理를 원용하여 法의 흠결을 보충하였다. ≪經國大典≫ 및 ≪續大典≫의 분묘에 관한 ‘法’조문은 서로 모순·충돌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판관은 분묘소송에서 ‘情·理’에 해당하는 ‘앉아서도 서서도 안 보임(坐立具不現)’의 원리를 원용하여 재판하였다. 유명한 법철학자 로날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법원리주의를 주창하였는데, 그는 법체계를 확정적인 법규범(legal rules)과 법원리규범(Principle)으로 구성된 체계라는 주장을 하였다. 드워킨의 법원리주의와 情·理·法의 논증구조는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지만 동양의 전통법에서 서양의 법철학에서 논의하는 법원리주의를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이에 대해 ‘반드시 그렇게 볼 수는 없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동양법과 서양법의 법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法’이라는 글자와 ‘Law’의 의미가 다르며, ‘情·理’와 ‘Morality’, ‘Equity’, ‘Principle’ 등의 용어는 대비해 볼 수 있는 용어이지만, 이들이 개념필수적으로 동일한 용어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