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우쯔후이(吳稚暉)는 청조의 붕괴와 열강의 침략, 전통사상과 서양사상의 첨예한 대립 가운데 중국 전통 도덕을 비판하고 서양 과학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인생관을 제시함으로써 과학만이 중국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신문화운동이 단순히 서양의 과학을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도덕을 배움으로써 형식적인 복고주의와 전통주의에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통속적인 언어로 전통 철학을 비판하고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힘썼을 뿐만 아니라, 과학으로 인생관과 세계관, 우주관을 관통하는 사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5.4시기 사상사를 다루는 저작들 가운데 그를 중요하게 언급하거나 그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저작은 거의 없으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미미한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장제스(蔣介石)의 편에서 반공이념을 견지한 그의 정치적 입장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나 5.4시기를 거치며 과학 이념이 대중화, 보편화되고 유과학주의(唯科學主義)가 득세하게 되는 데 있어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우쯔후이 사상의 유래와 과학에 대한 견해를 우주관과 인생관, 그리고 이상사회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현대 중국철학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우쯔후이가 강조한 “과학”의 핵심 정신은 근대과학의 특성 중 하나인 이성주의와 진보에 대한 신앙이다. 아울러 그가 생각하는 과학의 본질은 기계적 유물론과 진화론이다. “과학만능”에 대한 과도한 숭배와 국고(國故)에 대한 가차 없는 배척은 현대화 과정에서 중국의 전통 사상과 학술이 미친 영향을 지나치게 폄훼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우쯔후이에게 있어서 과학은 무정부주의 대동 사회를 실현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진보와 문명, 구국의 화신이며 공업화, 부강, 진보의 대표로 여겨졌으며, 시대적 흐름 및 사회발전 추세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당시 중국의 사회와 정치 현실을 개조할 수 있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생각되어 이후 중국에서 과학파가 득세하고 과학주의가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