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논문은 전통적인 서구 정의론에서 배제되어온 여성과 유학의 관점에서 정의론에 접근해보려는 것이다. 대표적인 서양 철학의 정의론인 롤즈 정의론의 문제와 한계를 중심으로 정의의 타자였던 여성주의와 유학의 관점에서 검토함으로써 새로운 정의론에 접근할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성주의와 유학을 통해 재구성하고자 하는 정의론은 자원과 권리의 공정한 배분을 위한 형식과 절차에 초점을 맞추는 서양 철학의 대표적 정의론인 롤즈의 정의론과 다르다. 여성주의와 유학에 따르면 정의는 일종의 도덕 원리이자 사회 구성 원리가 될 수 있다. 롤즈 정의론은 상호 무관심성을 바탕으로 공정성을 강조하며 정의의 주체를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며 합리적인 존재로 내세운다. 그러나 타자에 대한 고통의 민감성을 주장하는 유학은 선천적으로 내면화된 타자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정의의 가장 중요한 원리로 삼는다. 이는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관계적 자아와 유사하다. 특히 유학의 인(仁)과 비교될만한 여성주의의 보살핌의 윤리는 일종의 관계 중심의 정의론으로, 남성 중심의 정의론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유학과 여성주의가 모두‘관계적’이라는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보살핌의 윤리는 정의의 필수적 구성 요소가 아니라 남성적 정의에 대응하는 여성의 특질로 제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유학은 보살핌이 사적 관계를 넘어서 정치적 맥락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보살핌을 모든 인간의 보편적 상황이자 정치적 실천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여성주의의 입장과 대화 가능하다. 그러므로 서구적 정의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의와 보살핌을 대립항으로 보는 이분법을 넘어서 정의를 사랑과 보살핌의 하위에 규제적 원리로서 설정해야 한다. 한편 정의의 문제는 부정의가 사회 구성원의 고통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행복의 추구와 관련된다. 따라서 정의론의 한 축은 이상사회론으로 구성된다. 유학은 전통적으로 대동 사회론을 통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모색했지만 이는‘가족을 위한 국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서구 정의론이‘시장을 위한 국가’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는 이양자를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축 역할을 할 수 있다. 여성주의는 시장, 가족, 국가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배려와 보살핌을 중요한 가치로 두는 공동체적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서구적 정의론과 유학의 정의론을 담는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