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퇴옹의 돈오돈수론은 강한 선(禪)수행 담론이다. 이 담론에는 선수행 담론의 핵심쟁점들이 모두 얽혀 있는데, 논자는 돈점 담론 및 퇴옹의 선 수행 담론 모두에서 토대가 되고 있는 두 가지 쟁점담론을 주목한다. 하나는 ‘이해방식 수행과 마음방식 수행의 차이에 관한 담론’이고, 다른 하나는 ‘돈오 범주에 관한 담론’이다. ‘이해방식 수행과 마음방식 수행의 차이에 관한 담론’에 대해서는 이미 다룬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돈오 범주에 관한 담론’을 살펴 본 후, 이 두 가지 선수행 담론이 퇴옹의 돈오돈수론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음미하였다.BR 돈오의 범주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나는 철학적 지평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적 지평이다. 철학적 지평으로서의 돈오는, 중간지대를 설정할 필요가 없는 단박의 불연속적 전환이다. 그러나 현실적 지평에서의 돈오는,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다양한 수준의 돈오들이 그 좌표와 위상을 달리하면서 배열해 있는 범주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돈오 지평에 올라선 다양한 돈오 군(群)이 배열된 ‘돈오 범주의 영역/지대(地帶)/폭’을 설정하는 것이 수행현실에 더욱 적합할 것이다.BR 퇴옹의 돈점 담론은, ‘이해방식과 마음방식의 차이담론’과 ‘돈오 범주의 담론’이 결합되어 있는 복합담론이다. 퇴옹의 돈오돈수론에는 두 가지 담론이 얽혀 있는데, ‘해오(解悟)비판 담론’과 ‘분증(分證)비판 담론’이 그것이다. 퇴옹이 역설하는 증오(證悟)담론은 해오비판 담론과 분증비판 담론이 모두 수렴되는 곳이다. 해오와 분증의 허물과 한계가 모두 극복된 증오를 천명하는 것이 퇴옹의 돈오돈수론이다.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넘나들 수 없는 경계선을 선명하게 획정하고, 선문 안에 돈오점수적 화엄선과 돈오돈수적 공안선이 결코 공존/양립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퇴옹의 태도는, 이해방식 행법과 마음방식 행법의 차이 담론에 관한 퇴옹의 입장천명인 셈이다. 또한 일체의 분증(分證)을 돈오에서 배제하려는 퇴옹의 태도는 ‘돈오 범주에 관한 담론’으로 보인다. 퇴옹의 ‘돈오 범주에 관한 담론’은 선불교 내부의 현실 문제를 겨냥한 실용주의적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퇴옹의 돈오돈수론에서는, 돈오 지평 위의 다양한 돈오 군(群)이 배열된 ‘돈오 범주의 영역/지대/폭’을 수용할 수 있는 언어적 공간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