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1981년 돈오돈수(頓悟頓修)를 표방한 조계종 종정 성철(性徹, 1912-1993)이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의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을 비판한 이래 진행된 돈점논쟁(頓漸論諍) 속에서 지눌 선(禪) 사상은 다각도로 고찰되어 왔다. 이 논쟁의 주요 초점 중 하나는 지눌의 돈오점수론이 그가 만년에 강조한 간화선(看話禪)과 사상적 연결성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돈오점수는 불교의 이론적 가르침[敎]에 대한 지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해오(解悟)와 연결된 수행법인 반면, 간화선은 지적 이해[知解]를 완전히 떠나 증오(證悟)로 이어진다고 여겨지는 수행법이기 때문이다. 돈오돈수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깨달음에 있어서 지적 요소를 강하게 부정하면서 돈오점수와 간화선의 연결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지눌이 만년에 간화선을 강조한 것도 그가 사상적 전환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지눌의 사상체계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돈오점수론과 간화선의 수증론적 연결성을 설명하려 하였다. 이 입장에서는 해오가 비록 지적 이해를 매개로 얻어지지만 점수를 거쳐 결국 증오로 연결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결국 돈점논쟁은 깨달음과 닦음에 있어서 지해(知解)의 역할과 정당성을 중심으로 돈오점수론과 간화선이 정합성을 가지는가의 구도로 접근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돈오점수론과 간화선의 사상적 연결 문제를 해오와 증오의 의미와 관계를 재고함으로써 논의해 보려 한다. 논쟁의 구도 속에서 해오는 증오와 대비되어 전혀 인정되지 않거나 혹은 단지 불완전한 깨달음으로만 여겨진 경향이 있다. 먼저 기존의 해오와 증오에 대한 해석을 깨달음과 닦음에 내재된 근본적 문제를 바탕으로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그리고 나서 지눌이 제시하는 해오의 의미를 성기(性起)의 개념을 바탕으로 재조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오와 증오의 수증론적 관계를 논의한 후, 마지막으로 돈오점수와 간화선 수행의 연결성의 문제를 고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