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고봉원묘(高峰原妙)는 송원(宋元) 교체기에 생애를 보냈으며, 당시 유행하던 간화선(看話禪)을 중흥시킨 이로 평가받는다. 본고에서는 고봉원묘의 생애와 관련된 저술, 그리고 선사상의 특질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고봉의 법맥은 남종선의 남악계(南嶽系) 가운데 임제종(臨濟宗)의 양기파(楊岐派)를 계승하고 있으며, 이는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한 대혜종고(大慧宗杲)와 동일하다. 또한 고봉이 활동한 지역은 바로 대혜가 간화선을 선양한 임안(臨安)과 같기 때문에 고봉이 간화선 수행에 전념한 것은 바로 이러한 두 가지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봉의 설법을 모은 『선요』는 그 서문에 기록된 것과 같이 고봉의 입적 전에 간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어록』은 비교적 후대에 『선요』에 누락된 법어를 모아 상⋅하 2권으로 출간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고봉의 법어집에 나타난 선사상의 특질은 대체로 ‘개당보설(開堂普說)’로부터 엿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고봉은 임제종(臨濟宗)의 종풍(宗風)을 크게 선양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이고 있으며, 또한 묵조선(黙照禪)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고봉은 평생을 간화선 수행에 전념하는데, 자신의 실참(實參)을 근거로 하여 유명한 ‘대신근(大信根)⋅대의정(大疑情)⋅대분지(大憤志)’의 ‘삼요(三要)’를 제창하였다. 또한 고봉은 ‘공안(公案)’으로부터 ‘화두(話頭)’를 도출하는 일반적인 간화선의 전통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특한 ‘삼관(三關)’의 화두를 제창하고 있다. 이러한 고봉의 선사상은 현재에 있어서도 여전히 간화선 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