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만일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상적인 상황에서 제기되는 육화의 이유(ratio incarnationis) 논쟁은 중세와 그 이후 스콜라 신학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논쟁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 단계는 토마스와 스코투스까지의 전개 과정이고 두 번째는 이후 토마스 학파와 스코투스 학파로 대변되는 두 입장 사이의 치열한 토론이다. 본 연구는 첫 번째 단계를 다루되, 특히 토마스와 스코투스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비교 분석하였다.토마스는 『명제집 주해』와 신학대전에서 이 문제에 대한 스콜라 선학(先學)들 곧 오툉의 호노리우스와 도이츠의 루퍼트,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게릭, 알베르투스 마뉴스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종합하면서 본인의 입장을 제시한다. 그는 철저하게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에서 출발하여, “만일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하느님께서도 육화하지 않으셨을 것이라 말하는 편이 적절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특히 토마스는 “복된 탓”이란 말로 표현되는 죄의 역설에 주목하여, 하느님의 강생을 인간이 처한 죄의 현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음을 역설한다. 아울러 그는 본성적선과 본성을 넘어서는 선을 구분하여, 육화는 후자에 해당하기에 피조물에게 마땅히 주어질 수 없는 실재임을 강조한다.스코투스는 토마스를 비롯한 선학들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되, 신적 예정의 순서를 목적인 개념으로 풀어내며 토마스와는 사뭇 다른 입장을 제시한다. 스코투스에 따르면 육화를 통해 성취된 선 중에 가장 위대한 선은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죄로부터의 인간 구원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목적인이며, 그렇기에 신적 예정에서 가장 우선적인 위치를 누린다. 그러므로 인간의 범죄 여부와 상관없이, 신적 예정의 성취를 위해 하느님의 강생은 이루어져야만 했다는 것이다.육화의 이유에 대한 천사적 박사와 명민한 박사의 입장은 여러모로 비교되는데, 특히 본성적 선과 본성을 넘는 선에 대한 구분, 죄의 실재와 역설에 대한 관점, 신적 예정의 성취 등에 있어 그러하다. 각각의 입장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강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오늘날 독자들은 그 안에서 다양한 신학적, 철학적 요소들과 뉘앙스를 발견하게 된다. 가상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는 육화의 이유 논쟁은 역설적으로 지극히 현실적이고 핵심적인 논제들을 직간접적으로 포괄하며, 그런 점에서 스콜라 신학의 학문적 자유와 다양성, 역동성을 드러내준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