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유교자본주의론」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윤리가 서구 자본주의 출현과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는 베버이론에 착목하고 있다. 즉 동아시아에서도 유교 윤리가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 생산력의 폭발적 증가라는 자본주의의 본연적 메커니즘의 안정적 구축에 동력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것은 베버 이론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베버에 의하면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윤리는 노동과 직업적 소명의식을 통하여 초기자본주의 형성에 기여했지만,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확대 메커니즘과는 친화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반대하는 측면을 명확히 하고 있다. 금욕적 직업 노동을 통해 축적된 부가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라는 측면을 가진다면, 이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에서 용인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윤리적으로 묵인하는 것에 불과한 ‘파생적 결과’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베버의 자본주의가 현실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재물에 대한 충동적 탐욕과는 거리가 먼’,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념형’의 자본주의라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대한 유교 윤리의 기여를, 자본주의에 대한 프로테스탄티즘의 기여와 유사한 관점에서 검토하는 유교자본주의론은 베버 이론에 대한 오해가 내재되어 있다. 그렇지만 베버 이론에 의하면 프로테스탄티즘의 ‘富의 합리적’ 사용이라는 측면은 기부문화의 확대와 부의 재분배 그리고 자본주의의 무한욕망적 순환 고리를 제어하고 통제하여 합리성과 긍정성을 높일 수 있다. 정경유착과 각종 비리 및 불공정행위를 반대하는 이론적 토대가 될 여지가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重義輕利’라는 자신의 욕구를 자제하고, 대의와 공공을 위해 헌신할 것을 요구하는 유교 윤리와 자본주의와의 상관성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접근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