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중관학파와 유식학파는 대승불교의 중심 학파들이지만, 그 두 학파의 중도 개념은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용수(龍樹)는 중도를 비유비무(非有非無)라고 설명하면서, 공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지만, 『중변분별론』은 중도를 비공비불공(非空非不空)이라고 설명하면서, 공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식학파가 용수의 중도 개념을 부정하고, 새로운 중도를 주장하게 되었던 동기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므로 논자는 본 연구에서 유식학파 중도 개념의 특징과 의미 등에 대한 재검토를 통하여 유식학파 중도 개념의 동기를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유식학파의 중도 개념은 허망분별의 존재성 승인, 공성의 존재성 승인, 소취-능취의 존재성 부정이라는 세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모두 부파불교의 법유설과 중관학파의 법공설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기존의 불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새로운 불교 사상이다. 이로부터 유식학파의 중도 개념은 ①부파불교의 법유설 비판, ②중관학파의 법공설 비판, ③유식이라는 새로운 불교 사상의 확립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유식학파의 발생 동기는 중도 개념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①부파불교의 법유설 비판, ②중관학파의 법공설 비판, 그리고 ③유식관의 선정 체험에 근거한 새로운 불교 사상의 확립으로 요약된다. 왜냐하면 유식학파는 유가사(瑜伽師)들의 선정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형성된 학파로서, 『해심밀경』이나 『유가사지론』 등의 최초기 경론에 이미 부파불교의 법유설과 중관학파의 법공설에 대한 비판의 문구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유식학파의 중도 개념을 구성하는 세 항목의 동기를 살펴보면, 유식학파 중도 개념의 동기는 유식학파의 발생 동기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유식학파의 ‘비공비불공’ 중도 개념은 부파불교의 법유론과 중관학파의 법공설을 비판하고, 윤회, 해탈, 공성 등 불교의 핵심 개념들을 유식관의 선정 체험에 따라 설명함으로써, 자신들의 유식 사상을 새로운 대승불교로 확립하기 위한 개념 틀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