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고는 인도 ‘초기 석굴사원’으로서의 학계에 중시되고 있는 나식(Nāsik) 석굴사원에 관한 시론적 탐색으로 그 창건 시기 및 조영 양식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미술사적 의의를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진행하였다. 인도에는 약 1,200개의 석굴사원이 있는데, 그중 불교 석굴이 75%를 차지한다. 서인도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것은 기원전 3세기 아쇼카 왕 때의 일이다. 그 이후 서인도 중부 데칸 지역은 고대 무역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다양한 사회계층의 후원으로 수천 개의 승원과 탑원이 건립되었다. 그 가운데 유명한 나식 석굴사원은 모두 23개(혹은 24개) 그룹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불교 석굴로, 개착시기에 따라 기원전・후 1세기경의 ‘전기 석굴’과 기원후 7세기경에 걸쳐 조영된 ‘후기 석굴’로 구분할 수가 있다. 이 기간 동안 상좌부(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大乘佛敎)로의 변화가 있었다. 즉 이것은 테라바다 불교 에서 대승불교 건축양식으로의 변천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주요한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석굴사원의 모습은 초대형 석굴과 간소하고 규모가 작은 석굴 그리고 사원 내에 뒤늦게 세워진 미완성 석굴들이 혼재되어 있다. 특히 후기에 이르면 나식 18굴 차이티야(Caitya)에 한정되었던 예배 대상이 불상으로 대체되어 승려들의 주처로 사용된 비하라(Vihāra)에도 표현되었다. 이는 비하라의 용도가 더 이상 승려들이 거주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소의 역할을 겸비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전기 석굴에 비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나식 석굴사원에는 건축 양식 및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헌납 명문, 조영 기록 등이 풍부하게 남아있어 당대의 사회사·경제사·정치사·미술사·정신문화 등을 검증해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Ajanta, Ellora, Bhaja, Aurangābād, Bedsa, Pitalkhora, Karli, Junnār, Kanherī 등 서인도 석굴사원의 시원 형식을 살필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인도의 종교문화와 건축문화들은 역사적 변화 발전과정 속에서 이질문화간의 상호 혼합과 결합의 영향을 받아 다양성을 가지고 발전하였으며 그러면서 거기에는 인도 특유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음이 큰 특징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