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논문에서는 「계사전」에서 왕충에 이르기까지,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이 새로운 지식과 함께 어떻게 변해왔는가라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계사전」에서는 시초(蓍草)의 신비성에 의거하여 길흉을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秦漢代의 氣의 개념은 천지를 새로이 설명하면서, 천지의 변화인 계절을 통해서 인간의 길흉을 판단하게 했다. 『여씨춘추』와 『관자』·『회남자』를 통해서, 계절을 중심으로 인간의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이 당시에 굉장한 믿음을 얻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계사전」에서 언급하는 복서의 점(占)에 대한 의심, 복서의 점에 대한 믿음의 감소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춘추번로』의 경우도 계절을 중심으로 하는 길흉판단의 입장에 서있기는 하지만, 氣자체에 무게를 더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왕충의 경우는, 무위자연한 천과 氣를 주장하면서 인간의 길흉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다고 하여, 이전의 계절을 기준으로 길흉을 판단하던 관점도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이 왕충에 이르러서 시초의 신비성이 부정되고, 「계사전」에서 이야기하는 복서의 점은 그 근거를 잃게 되었다. 「계사전」에서 왕충까지의 길흉판단은 신비성에 의거한 방법에서 경험적인 방법으로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