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논문에서는 중국에서 전개된 夷夏之辨의 유래와 왕부지의 이하지변을 개괄하고, “이적들이란 그들을 섬멸한다고 하더라도 어질지 않다고 할 수 없고, 그들에게서 약탈하더라도 의롭지 않다고 할 수 없으며, 그들을 꾐에 빠트린다고 하더라도 신뢰가 없다고 하지 못한다. 신뢰니 의리니 하는 덕목들은 사람과 사람끼리 어울리며 지키는 것이지, 결코 사람이 아닌 것들에게까지 베푸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대표하는 왕부지의 능멸적 변방민족관이 가진 문제점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왕부지의 이하지변과 능멸적 변방민족관에도 두 가지 점에서 변명이 가능함을 논하였다. 첫째는 변방민족들이 중원을 침범하여 약탈, 살육하거나 자기들의 왕조를 세워 중원을 지배할 경우에 그렇게 하라는 것으로서, 이것이 조건적ㆍ유보적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가 변방민족 중의 하나인 만주족의 지배 하에서 남은 평생을 孤憤 속에 살며,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나날을 살았다는 점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 두 가지를 감안하지 않고 왕부지의 이하지변을 끝내 비판하려 들다 보면, 우리가 윤봉길의사, 안중근의사, 백범선생을 똑같이 비판할 수밖에 없는 곤혹스러움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는 왕부지가 보인 능멸적 변방민족관이 설 자리를 아예 제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민족을 침탈하지도, 착취하지도, 살육하지도, 식민지로 지배하지 않아야 하며, 이는 인류에게 영원히 의미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이 가능함에도 그가 변방민족들은 맹자가 말한 사람됨[性]을 갖지 않고 있고 四德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나, 화하족이 실현한 관복과 禮制의 문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본 것, 변방민족들에 비해 화하족들을 그렇게 우월하게 본 것 등이 착오였다는 점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하지변이 정당하려면, 오늘날 중국이 벌이고 있는 변방민족들에 대한 역사 침탈, 티베트ㆍ위구르 지역의 강점, 동남아 여러 나라의 영토 침범 시도 등에도 적용되어야 함을 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