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한국 사회에서 최근에 폭발적 인기를 끈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들어있는 독특한 관점을 파악하여 분배 정의 이후의 재분배를 정당화하는데 활용할 여지가 있는지를, 그리고 그러한 정당화가 여성주의 전망과 대안을 제시하는 논거가 될 수 있는지를 찾는 데 목표를 둔다.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 덕 이론에 근간을 두는 ‘공공선’ 실현을 정의의 궁극 목표로 삼는다. 공공선을 실현하려면, 공리주의나 자유주의가 국가 중립성과 자아 중립성에 기초하는 자율 논리를 견지하면서 ‘자율 논리에 따라 분배 정의를 주장하는 것’ 및 ‘재분배를 거부하는 것’을 잠재울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샌델은 칸트와 롤스의 이론을 분석하면서, 자유 계약이 계약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능력 계발 기회가 우연적이어서 능력도 도덕적 임의성을 지닌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자유 계약의 허점과 도덕적 임의성은 부당한 계약을 무효화할 가능성뿐만 아니라, 재분배를 정당화할 가능성을 만드는 근거가 된다. 동일한 논리를 여성 문제에 적용하면, 남성 중심적 국가에서 여성에게 분배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것도 계약 출발점에서의 기회 부등성과 도덕적 임의성 때문이라는 차원에서 비판할 수 있다. 샌델은 여성주의자도 아니고, 여성주의를 의식하여 논의를 펼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성주의 입장에서 가부장제국가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국가가 만들어낸 ‘남성 편향적 계약 구조’와 ‘능력 계발 기회의 부등성’을 지적할 여지를 창출하기 때문에, 그 여지를 굴절된 남성 편향적 국가를 비판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중립적 국가와 중립적 자아에 기초하는 자율 논리를 비판하는 샌델은 도덕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가 투영된 국가에서 활동하는 자아로서 ‘부담을 감수하는 자아’를 제시한다. ‘부담을 감수하는 자아’는 공공선 실현을 위해 도입되지만, 그 자아를 여성주의에 적용하면 그동안 여성을 억압했던 가부장제 남성 자아가 여성에게 부담을 느끼고 책임을 감수하는 자아로 발전시킬 수 있다.